법륜스님 :
여기 뜨거운 불덩어리가 있는데, 이걸 집고서 “어떻게 하면 놓습니까?” 하고 묻는 것하고 똑같습니다.
“뜨거워 죽겠어요, 어떻게 놔요?” 답은 “그냥 놔라”. 우리가 나도 모르게 뜨거운 물건을 집었다가 “앗! 뜨거!” 이러면서 그냥 내려놓잖아요.
근데 이걸 쥐고 뜨겁다 고함치면서도 어떻게 놓느냐고 자꾸 묻는 것은 두 가지 이유입니다.
하나는 덜 뜨거워 아직 쥐고 있을 만하든지. 또 하나는 뜨겁지만 갖고 싶든지.
그러니까 첫 번째는 덜 뜨거우면 좀 더 뜨거울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고,
두 번째 정말 못 견딜 정도로 뜨겁다고 하면서도 갖고 싶어 쥐고 있다면 이걸 갖고 싶기 때문에 손을 데는 과보를 받아야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손은 또 안 데고 갖고 싶다 아닙니까? 하지만 그런 길은 없습니다.
갖고 싶거든 손 데는 과보를 받든지, 손 데는 과보를 받기 싫거든 갖고 싶더라도 놓던지. 그 외에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묻는 것은, 이것도 가지면서 손도 안 데는 기막힌 방법은 없나 해서 아닙니까? 기막힌 방법을 가르쳐줄 수는 있습니다.
오른손에 쥐고 있던 걸 왼손으로 옮기면 우선 뜨거운 게 해결이 됩니다. 또 왼손에 쥐고 있으니 내가 가지고 있습니다.
갖기도 하고 뜨거운 것도 해결됐단 말예요. 좋은 방법이다 싶겠지만 조금 있으면 또 왼손이 뜨거워집니다.
이것은 얼핏 보면 좋은 방법 같지만, 이건 방법이 아닙니다.
방법을 계속 찾는 것은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놓기 싫다는 것입니다.
결혼해서 사는 분들 중 자식까지 완전히 애를 먹이고. 달리 더 이상 방법이 없어서. 온갖 방법 다 해보고 안 되서 오는 사람들은 금방 내려놓습니다.
왜? 더 이상 하루도 견디기가 어려우니까요.
어리석은 말은 두들겨 패도 안 가고 영리한 말은 채찍 그림자만 봐도 알아서 달립니다.
나한테 안 좋겠구나 하면 바로 행하는 겁니다. 딴사람 얘기도 들어보면서 저렇게 살면 저렇게 되겠구나, 내가 애를 낳으면 저렇게 되겠구나, 이렇게 견주어 가면서 나를 고쳐야 합니다.
아침에 4시에 일어나기로 했다면 그냥 일어나는 거예요.
눈이 감겨도 일어나고, 안 일어나져도 무조건 일어나는 겁니다.
정해놓고 그냥 하는 겁니다. 차선책은 욕심은 못 내려놓더라도, 욕심 부리는 나를 알아차리는 겁니다.
그럼 다음에 무슨 과보가 따르겠구나, 미리 짐작하는 거예요. 과보가 일어날 때 이미 짐작을 했기 때문에 충격이 덜 옵니다.
사촌 논 사면 배 아픈 거 자기가 보잖아요? 그럼 나 좋은 일 생길 때 남도 배 아프겠다 짐작이 됩니다.
내가 좋은 일 해서 칭찬 듣는데 옆에서 비난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찌 그럴 수 있나 하지만 당연한 겁니다.
자기 마음의 움직임을 알아차리고 늘 지켜보는 사람은 세상살이에 억울할 게 없습니다.
욕심은 욕심대로, 질투는 질투대로 다 하면서 결과는 좋기를 바라는데, 그런 건 이 세상에 없습니다.
지은 인연의 과보는 깊은 바다 속에 숨어도 깊은 산속에 숨어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발심을 해서 정진을 해봐요. 자꾸 안 된다 그런 소리 하지 말고. 안 되는 건 없어요. 해버리면 됩니다.